I. 경쟁의 기원: 역사적 뿌리와 근원적 분쟁
A. 1947년 분할: 논쟁적 유산
- 인도와 파키스탄의 탄생:1947년 8월 영국령 인도의 분할은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와 이슬람교도가 다수인 파키스탄의 형성으로 이어졌다.1 이러한 분할은 종교적 경계에 기반했으며,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도들의 고국으로 의도되었다.4 이 과정은 엄청난 인간적 고통을 수반하며 역사상 가장 크고 유혈이 낭자한 이주 중 하나를 야기했고, 약 1,500만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으며 20만에서 200만 명 사이의 사망자를 낸 공동체 폭력으로 이어졌다.1 이러한 충격적인 탄생은 쓰라림과 불신의 즉각적인 유산을 남겼고, 이는 양국 관계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분할의 폭력적인 성격과 그에 따른 난민 위기는 이후 양국 관계를 괴롭히는 적대감과 미해결 불만의 토대를 마련했다.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도된 분할이라는 행위 자체가 새롭고 지속적인 국가 간 분쟁을 야기한 것이다.
- 카슈미르 문제: 편입과 초기 분쟁 (1947-1948):번왕국(藩王國)들은 인도, 파키스탄 중 한 곳에 편입하거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3 힌두교도 군주가 통치하는 이슬람교도 다수 지역인 카슈미르는 처음에는 독립을 추구했다.1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의 이슬람교도 다수를 이유로 카슈미르의 편입을 예상하고 7, 1947년 10월 카슈미르 일부 지역을 침공한 부족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다.1 침공에 직면한 마하라자 하리 싱은 인도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고, 그 대가로 인도에 편입했다.1 이 편입은 파키스탄이 강압적이라고 보고 인도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다고 보는 핵심적인 논쟁점이다. 이어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1947-1948)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냈고 9, 1948년 유엔 중재 휴전으로 끝났다.2 카슈미르는 휴전선(이후 통제선-LoC)으로 분할되어, 인도가 약 3분의 2(잠무, 카슈미르 계곡, 라다크)를, 파키스탄이 3분의 1(아자드 카슈미르, 길기트-발티스탄)을 통제하게 되었다.2 카슈미르인들이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유엔 후원 국민투표가 약속되었지만,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2 이는 파키스탄과 많은 카슈미르인들에게 핵심적인 불만으로 남아 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편입과 이행되지 않은 국민투표에서 비롯된 카슈미르의 미해결 상태는 인도-파키스탄 관계에서 가장 주요하고 지속적인 발화점이 되었으며, 여러 차례의 전쟁과 지속적인 불안정을 야기했다.
분할 과정의 결함, 특히 래드클리프 선과 카슈미르로의 육로 접근을 제공한 구르다스푸르의 인도 귀속 결정은 파키스탄에게 “심오한 배신”이자 카슈미르를 확보하려는 인도의 의도적인 책략으로 인식되어 분쟁의 궤도를 선제적으로 형성했다.7 래드클리프 선은 종교적 다수성에 따라 분할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불투명성과 정치적 압력으로 얼룩졌다.7 파키스탄은 약간의 이슬람교도 다수 지역이었던 구르다스푸르가 인도에 귀속된 것을 인도가 카슈미르에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결정적인 조작으로 간주하며, 이것이 없었다면 인도의 통제는 더욱 미약했을 것이라고 본다.7 이러한 인식은 카슈미르 분쟁의 씨앗이 단지 마하라자의 결정이나 침공뿐만 아니라 국경 획정 과정 자체에 뿌려졌음을 시사하며, 새로운 국가들의 기초적인 합의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을 야기했다. 이는 분쟁을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 국가 형성 과정 자체의 역사적 불의에 대한 문제로 만든다.
B. 초기 외교 관계와 유엔의 역할:
1947-48년 전쟁 이후 인도는 유엔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10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48년 4월 22일 결의안 47호를 통과시켜 파키스탄 군대 철수, 인도 군대 감축, 카슈미르에서의 국민투표라는 3단계 절차를 제시했다.3 1949년에는 휴전 위반을 감시하기 위해 인도-파키스탄 유엔 군사 감시단(UNMOGIP)이 설립되었다.10 유엔의 초기 개입은 분쟁 해결을 목표로 했지만, 그 미이행이 영구적인 논쟁의 원천이 된 틀(국민투표)을 의도치 않게 만들었다. 인도는 이후 1972년 심라 협정으로 카슈미르가 양자 문제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며 유엔 감시단의 관련성을 축소했다.10
카슈미르를 둘러싼 초기 분쟁은 즉각적으로 이 문제를 국제화시켰고, 외부 세력 개입의 선례를 남겼다. 비록 영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었지만 말이다. 인도가 1948년 유엔에 이 문제를 제기했고 10, 유엔 결의안(47호 등)과 유엔 군사 감시단(UNMOGIP) 설립 3은 직접적인 국제적 개입을 의미했다. 국민투표는 실시되지 않았지만, 유엔의 개입은 카슈미르를 국제적으로 인정된 분쟁 지역으로 만들었고, 파키스탄은 이 지위를 계속 강조하는 반면 인도는 양자 해결을 선호한다.7 이러한 초기 국제화는 카슈미르에서의 어떠한 긴장 고조도 거의 필연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자제를 요구받게 만들어, 양국이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상징적 가치를 넘어선 잠무 카슈미르의 전략적 중요성은 처음부터 인식되어 분쟁의 강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8은 파키스탄 탄생 이전에도 카슈미르가 티베트, 중국령 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여러 외국/지역에 둘러싸인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강조한다. 7은 카슈미르의 지리적 위치와 양국의 수자원으로서의 중요성 등 인도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언급하며, 인도가 포기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자 파키스탄에 대한 완충지대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양국 모두에게 이러한 전략적 가치는 분할 원칙에 따른 단순한 영유권 주장을 넘어 분쟁을 격상시켜, 이 지역 통제에 대한 깊은 군사적, 정치적 투자를 설명해준다.
II. 전쟁의 역사: 주요 분쟁과 그 여파
A. 1965년 전쟁: 카슈미르라는 발화점
- 원인과 주요 사건:미해결된 카슈미르 분쟁과 이를 재점화하려는 파키스탄의 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9 파키스탄은 인도 통치에 반대하는 반란을 선동하기 위해 잠무 카슈미르에 군대를 침투시키는 지브롤터 작전을 개시했다.3 이 작전에는 현지인으로 위장한 파키스탄 군인 26,000~33,000명이 동원되었다.1 인도는 서파키스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으로 보복하여 3 라호르를 향해 국경을 넘었다.1 전쟁은 17일간 지속되었다.3 1965년 초 쿠치 습지(Rann of Kutch)를 둘러싼 국경 분쟁이었던 쿠치 분쟁 또한 긴장 고조에 기여했다.3 차윈다 전투는 대규모 전차전으로 기록되었다.13
- 결과와 타슈켄트 선언:전쟁은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결론 없이 끝났다.9 유엔이 명령한 휴전이 선언되었고 3, 이는 소련과 미국이 중재했다.9 소련이 중재한 타슈켄트 선언(1966년 1월)에서 양측은 전쟁 전 위치로 군대를 철수하고 외교/경제 관계를 복원하기로 합의했다.1 휴전 선언 당시 인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고 평가된다.3 1965년 전쟁은 카슈미르가 핵심 분쟁임을 재확인했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군사력의 한계를 보여주었고, 남아시아 분쟁 억제에 대한 냉전 강대국들의 관심을 부각시켰다. 파키스탄의 지브롤터 작전은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4
B. 1971년 전쟁: 방글라데시의 탄생과 권력 구도 변화
- 원인과 주요 사건:카슈미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의 위기로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3 서파키스탄이 1970년 총선에서 승리한 동파키스탄 아와미 연맹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에게 정부 구성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었다.1 파키스탄군의 동파키스탄에서의 서치라이트 작전은 광범위한 잔학 행위와 대규모 난민(약 1,000만 명의 벵골인)의 인도로의 유입을 초래했다.3 방글라데시에서는 약 30만에서 3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9 인도는 방글라데시 해방 운동(묵티 바히니)을 지원하며 개입했다.3 전쟁은 1971년 12월 3일 파키스탄이 인도 공군 기지에 대한 선제 공습(쳉기즈 칸 작전)을 감행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14
- 결과와 심라 협정 (1972):인도의 결정적인 승리였다.4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1 9만 명 이상의 파키스탄 군인이 항복했다.3 파키스탄은 해군의 절반, 공군의 4분의 1, 육군의 3분의 1을 잃었다.3 인도는 서부에서 상당한 파키스탄 영토를 점령했지만 1972년 심라 협정에 따라 선의의 표시로 반환했다.3 인디라 간디와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서명한 심라 협정은 양국이 분쟁을 양자 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카슈미르의 휴전선을 통제선(LoC)으로 개칭하기로 약속했다.1 1971년 전쟁은 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인도를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시켰다.15 또한 심라 협정으로 이어져 향후 양자 협상의 초석이 되었으며, 카슈미르에 대한 제3자 중재보다 양자주의를 강조했다.
C. 카르길 분쟁 (1999): 핵 그림자 아래에서의 전쟁
- 원인과 주요 사건:파키스탄 군인과 카슈미르 무장세력이 통제선을 넘어 카르길 지역의 인도 측 전략적 히말라야 고지를 점령했다.3 이는 평화 구상이었던 라호르 선언 직후에 발생했다.22 인도는 침입자들을 축출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 및 외교 공세(“비자이 작전”)로 대응했다.3 인도 공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0 분쟁은 2개월 이상 지속되었으며 고지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최소 1,000명의 전투원이 사망했다.9
- 국제적 압력과 결과:분쟁은 양국이 1998년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발생하여 1 핵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국제적 우려를 불러일으켰다.9 미국 주도의 국제 사회는 파키스탄에 군대 철수를 위한 상당한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3 인도의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였다.6 파키스탄군은 철수했고 인도는 점령지를 탈환했다.1 파키스탄은 처음에는 정규군 개입을 부인했지만 나중에 나와즈 샤리프에 따르면 4,000명 이상의 파키스탄 군인이 사망하는 등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고 인정했다.3 카르길 분쟁은 두 핵보유국 간의 첫 직접적인 군사 대결이었다. 이는 핵 억지력이 재래식 분쟁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안정-불안정 역설”). 이는 신뢰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라호르 평화 프로세스를 약화시켰으며 파키스탄의 정치적 격변(무샤라프 쿠데타)으로 이어졌다.21 또한 남아시아 위기에서 국제 여론과 압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 주요 전쟁은 즉각적인 유발 요인이 있었지만, “타자”를 적대자로 중심에 두는 기존의 국가적 서사와 정체성을 강화하고 심화시켜 미래의 화해를 점진적으로 더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1965년 전쟁은 교착 상태였지만, 파키스탄에게는 더 큰 침략자에 맞선 국가적 회복력의 순간으로 규정되어 국가 정체성과 군대의 역할을 공고히 했다.13 인도는 이를 카슈미르에 대한 또 다른 파키스탄의 침략 사례로 간주했다. 1971년 전쟁은 인도의 명백한 승리이자 파키스탄에게는 굴욕적인 패배였으며, 동쪽 영토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는 파키스탄에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기고 “복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으며 25, 인도의 지역 패권국으로서의 자아 인식을 강화했다.16 1999년 카르길 분쟁은 라호르 선언 이후 인도로서는 배신으로 여겨져 파키스탄의 의도에 대한 인도의 회의론을 강화했고 23, 파키스탄의 패배는 심각한 국내 정치적 파장을 초래했다.21 이러한 반복되는 분쟁의 순환과 각국 내에서의 해석은 입장 경직과 상호 불신 심화에 기여하여, 각각의 후속 평화 구상을 이전보다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휴전과 평화 협정을 중재하는 외부 세력(예: 1965년 미/소, 1999년 미)의 역할은 더 광범위한 확전을 막는 데 결정적이었지만, 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여 종종 지속적인 평화보다는 일시적인 휴전으로 이어졌다. 1965년 미국과 소련은 휴전과 타슈켄트 협상을 중재했다.9 1999년 미국의 개입은 파키스탄의 철수를 압박하는 데 핵심적이었다.9 이러한 개입은 즉각적인 전투를 중단시켰지만, 카슈미르 문제 해결이나 국경을 넘나드는 무장 활동과 같은 문제를 강제하지는 못했다(아마도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강대국들이 심각한 위기를 관리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남아시아 강대국 중 하나 또는 둘 모두를 소외시킬 수 있는 포괄적인 해결책을 추진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근본적인 분쟁은 계속 악화되어 미래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카르길 분쟁은 미해결된 영토 분쟁과 핵 능력의 위험한 교차점을 독특하게 보여주었으며, 양국과 국제 사회 모두에게 분쟁 관리 전략의 재조정을 강요했다. 카르길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1998년 핵보유국을 선언한 이후 벌어진 첫 번째 전쟁이었다.6 핵 확전의 공포는 신속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압력의 중요한 요인이었다.9 분쟁 중 파키스탄의 암묵적인 핵 위협 23과 인도의 자제된 군사 대응(처음에는 통제선(LoC)을 넘지 않음) 23은 새로운 수준의 신중함을 나타냈지만, 오판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양국이 핵 교리와 지휘 통제 구조를 개선하도록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23, 향후 인도-파키스탄 군사 대결의 세계적인 이해관계가 높아졌음을 강조했다. 이는 핵무기가 제한된 규모의 재래식 전쟁에 대한 완벽한 억지력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D. 표: 인도-파키스탄 주요 전쟁 및 분쟁 연대기
전쟁/분쟁 명칭 | 연도 | 주요 원인 | 주요 사건/작전 | 결과 (군사적 및 정치적) | 주요 합의/선언 |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 1947-1948 | 카슈미르 번왕국의 귀속 문제 | 파키스탄 부족 세력의 카슈미르 침공, 인도 군 개입 | 유엔 중재 휴전, 카슈미르 분할 (LoC의 전신인 휴전선 설정) | 유엔 결의안 47호 |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 1965 | 카슈미르 문제 재점화 시도 (파키스탄의 지브롤터 작전), 쿠치 분쟁 | 지브롤터 작전, 인도군의 서파키스탄 공격, 차윈다 전투 | 군사적으로 결론 없음, 수천 명 사망. 인도가 휴전 당시 약간 우세. | 타슈켄트 선언 (1966) |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 1971 |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독립 운동, 파키스탄군의 탄압(서치라이트 작전), 인도 개입 | 파키스탄의 선제 공습(쳉기즈 칸 작전), 인도군의 동파키스탄 진격, 파키스탄군 항복 | 인도의 결정적 승리, 방글라데시 독립. 파키스탄군 9만 명 이상 항복. | 심라 협정 (1972) |
카르길 분쟁 (제4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 1999 | 파키스탄군 및 무장세력의 LoC 침범 및 인도측 고지 점령 | 인도군의 비자이 작전, 공군 지원, 고지대 전투 | 인도의 결정적 군사적 승리, 파키스탄군 철수. 핵보유국 간 첫 직접 충돌. | 라호르 선언 (분쟁 직전, 신뢰 구축 노력) 와해 |
2019년 인도-파키스탄 대치 | 2019 | 풀와마 테러 공격 | 인도 공군의 발라코트 공습, 파키스탄의 보복 및 인도 전투기 격추 | 긴장 고조 후 완화, 양측 모두 자국 내에서 승리 주장. | – |
2025년 인도-파키스탄 교전 | 2025 | 팔할감 관광객 테러 공격 | 인도의 ‘신두르 작전'(파키스탄 내 테러 기반 시설 공습), 파키스탄의 미사일 및 드론 보복 공격, 양측 공중전 및 포격전. 세계 최초 핵보유국 간 드론 전쟁. | 현재 진행 중인 긴장 고조 상태, 다수의 사상자 발생. 외교 관계 격하, 국경 봉쇄, 조약 중단. | – |
III. 현대적 도전과 고조되는 긴장 (2019년 이후)
A. 재조명되는 카슈미르 분쟁
- 헌법 370조 폐지와 그 파장:2019년 8월 인도 정부는 잠무 카슈미르에 특별 자치 지위를 부여했던 인도 헌법 370조를 폐지했다.1 이 조치는 해당 지역을 인도에 더욱 완전히 통합시키려는 목표를 가졌다. 이 결정은 파키스탄으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았는데, 파키스탄은 이를 국제 규범과 심라 협정의 일방적인 위반으로 간주하여 양국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27 이는 외교 관계 격하로 이어졌다.27 370조 폐지 이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는 봉쇄, 통신 차단, 정치 지도자 및 민간인 구금 등 보안 탄압이 뒤따랐다.1 인도는 이것이 국내 문제라고 주장하는 반면 26, 파키스탄은 이 문제를 국제화하려고 시도해왔다.27 2024년 9월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실시된 주의회 선거는 370조 폐지에 대한 거부로 해석되었으나, 인도 정부는 이를 수개월간의 대중 불안과 가혹한 법 시행 이후 안정 회복의 증거로 홍보했다.26 370조 폐지는 인도의 카슈미르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이전의 현상 유지에서 벗어났다. 이는 카슈미르인들의 소외감을 심화시키고 파키스탄에게 국제적으로 인도를 비판할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여 분쟁의 역학을 크게 변화시켰다.
- 통제선(LoC) 현황 및 국경 교전:통제선(LoC)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이 아닌 사실상의 군사 경계선으로 남아있다.30 이곳은 중무장되어 있다.31 빈번한 정전협정 위반(CFV)과 침투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30 예를 들어, 2025년 4월 1일 파키스탄군은 푼치 지역의 크리슈나 가티 구역에서 인도 측으로 침투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30 모든 평화 및 정전협정의 “엄격한 준수”를 목표로 했던 2021년 정전협정은 3 2025년 최근 긴장 고조로 인해 심각하게 시험받고 있다.9 2025년 4월 팔할감 공격 이후 통제선과 국경을 넘어 격렬한 총격전, 드론 활동, 영공 침범이 발생했으며, 양측 모두 사상자를 보고하고 상대를 비난했다.9 통제선은 여전히 매우 불안정한 전선으로 남아있다. 정전협정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근본적인 긴장과 전략적 목표는 반복적인 교전으로 이어지며, 이는 항상 2025년에 목격된 것처럼 더 광범위한 분쟁으로 확대될 위험을 안고 있다.
B. 지속적인 테러 위협
- 주요 사건 (2019년 풀와마, 2025년 팔할감) 및 의혹: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리즘은 분쟁의 주된 원인이다.3 인도는 파키스탄이 특히 카슈미르에서 인도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는 라쉬카르-에-타이바(LeT) 및 자이쉬-에-무함마드(JeM)와 같은 무장 단체를 후원하고 은신처를 제공한다고 지속적으로 비난해왔다.2 파키스탄은 공식적인 개입을 부인한다.2풀와마 공격 (2019년 2월): JeM의 자살 폭탄 테러로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인도 준군사 40명이 사망했다.1 이로 인해 인도는 파키스탄 발라코트의 무장 단체 훈련 캠프로 추정되는 곳에 공습을 감행했다.1 파키스탄은 보복으로 인도 전투기를 격추하고 조종사를 포로로 잡았다.9팔할감 공격 (2025년 4월 22일): 무장괴한들이 카슈미르 팔할감에서 인도 관광객들을 공격하여 26명(대부분 인도 힌두교도)과 네팔 국적자 1명이 사망했다.9 인도가 LeT의 전위 조직으로 간주하는 저항 전선(TRF)이 책임을 주장했다.37 인도는 팔할감 학살의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했고 9, 파키스탄은 이를 부인하며 중립적인 조사를 요구했다.1 이러한 주요 공격들은 무장 단체의 지속적인 위력과 심각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각 사건은 비난, 부인, 보복의 순환으로 이어져 양국을 더 광범위한 분쟁 직전까지 몰고 간다.
- 양국 관계 및 “신두르 작전”에 미친 영향:팔할감 공격 이후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9 양국은 외교관을 추방하고, 비자를 취소했으며, 국경을 폐쇄하고, 서로의 영공을 폐쇄했다.3 인도는 2025년 5월 7일 “신두르 작전”을 개시하여 파키스탄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내 테러 기반 시설로 추정되는 9곳(바하왈푸르, 무리드케 포함)에 정밀 타격을 가했다.33 인도는 이러한 조치가 추가 공격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신중하고, 비확산적이며, 비례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다고 밝혔다.38 파키스탄은 이러한 공격으로 민간인 사상자(어린이 포함 31명 사망)가 발생했으며 테러리스트 캠프가 아닌 모스크 2곳이 피격되었다고 주장하며 부인했다.1 파키스탄은 인도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고 36, 인도는 이를 부인했다.42 이후 파키스탄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과 인도의 대응 조치가 이어졌다.33 이 분쟁은 핵보유국 간의 세계 최초 드론 전쟁으로 기록되었다.42 “신두르 작전”과 그에 따른 교전은 중대한 긴장 고조를 의미하며,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테러에 대한 인도의 공공연하고 대규모적인 보복이라는 진화하는 정책을 보여준다. 이는 위기 관리에 있어 새롭고 더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C. 군비 경쟁: 재래식 및 핵 차원
- 군사 균형 및 국방비 지출:인도는 인력, 예산, 장비 면에서 파키스탄에 비해 상당한 재래식 군사 우위를 점하고 있다.31 2024년 인도의 국방비 지출은 860억 달러(GDP의 2.3%)로 세계 4위였으며, 파키스탄은 102억 달러(GDP의 2.7%)로 12위였다.31 인도의 현역 군인 수는 파키스탄의 두 배 이상이다.31 인도는 더 많은 군용 항공기와 전투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40 양국 모두 국경 긴장으로 인해 주요 무기 수입국이다. 인도는 2020-2024년 두 번째로 큰 무기 수입국이었으며 러시아가 주요 공급국이었다. 파키스탄은 다섯 번째로 큰 수입국이었으며 중국이 주요 공급국이었다.40 재래식 군사 불균형은 파키스탄이 비대칭 전쟁(무장 단체 지원)에 의존하고 핵 태세를 균형추로 삼는 데 영향을 미친다. 진행 중인 군비 경쟁은 양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서 상당한 자원을 전용시킨다.
- 핵 교리 및 억지 안정성: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핵보유국을 선언했다.1 인도는 약 172~180개 이상의 핵탄두를, 파키스탄은 약 17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1인도의 교리: “선제 불사용”(NFU) 정책으로, 인도 영토나 군대에 대한 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비핵 국가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생화학 무기 공격에 대한 보복은 예외로 한다.46 “신뢰할 수 있는 최소 억지력” 태세를 유지한다.46 그러나 일부 인도 정치인들은 NFU 입장에 대해 보다 모호한 입장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46파키스탄의 교리: 전략적 모호성; 공식적인 포괄적 정책 성명은 없다. 특히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되는 재래식 인도 군사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 사용을 배제하지 않았다.46 파키스탄은 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전술 핵무기(TNW)를 개발하여 “선제 불사용 불가” 정책으로 나아가고 있다.46양국 모두 핵무기를 억지력으로 간주한다.31 그러나 핵무기 보유량에 대한 비밀주의와 “제2격 능력”에 대한 명확성 부족은 위험을 초래한다.31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의 핵 시설 공격을 금지하는 협정의 서명국이며 매년 목록을 교환한다.47 양국 모두 핵확산금지조약(NPT) 서명국은 아니다.47 핵 차원은 “상호확증파괴”(MAD) 시나리오를 만들어 이론적으로는 전면전을 억제해야 한다.31 그러나 파키스탄의 TNW 개발과 재래식 위협에 대한 명확한 선제 사용 옵션으로의 잠재적 전환은 핵 문턱을 낮추고 재래식 분쟁 중 오판 및 확전 위험을 증가시킨다. 카르길 전쟁과 최근 2025년 교전은 핵무기가 재래식 분쟁을 막지 못함을 보여주며 “안정-불안정 역설”을 만들어낸다.
D. 기타 논쟁적 문제
- 물 분쟁: 인더스강 조약(IWT)과 최근 중단:세계은행이 중재한 IWT(1960)는 인더스강 수계의 물 공유를 규정한다.1 인도는 3개의 동부 강(라비, 베아스, 수틀레지)을, 파키스탄은 3개의 서부 강(인더스, 젤룸, 체나브)을 통제한다.1 이 조약은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견뎌냈으며 국경을 넘는 물 관리의 성공 사례로 여겨졌다.1 2025년 4월 팔할감 공격 이후 인도는 IWT 참여를 중단했다.1 파키스탄은 인도가 자국의 물 공유분을 전환하거나 차단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전쟁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50 인도는 현재 파키스탄으로의 물 흐름을 완전히 막을 기반 시설이 부족하지만 혼란을 야기할 수는 있다.50 파키스탄은 농업과 수력 발전에 인더스 유역 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50 IWT 중단은 분쟁에 위험한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여 잠재적으로 수자원을 무기화한다. 이는 파키스탄에 치명적인 인도주의적, 경제적 결과를 초래하고 양자 협력의 드문 사례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 시르 크릭 분쟁:신드(파키스탄)와 구자라트(인도) 국경의 쿠치 습지대에 있는 96km 길이의 수로이다.56 이 분쟁은 쿠치와 신드 사이의 경계에 관한 봄베이 정부의 1914년 결의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에서 비롯된다.56 파키스탄은 동쪽 강둑(녹색 선)을 따라 경계를 주장하는 반면, 인도는 탈베그 원칙(항행 가능한 수로)에 따라 크릭 중앙에 경계가 있다고 주장한다.56 여러 차례의 회담(1997-2012년 12차례)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57 인도는 해상 경계선을 먼저 획정하자고 제안했지만 파키스탄은 크릭 분쟁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거부했다. 파키스탄은 국제 중재를 제안했지만 인도는 심라 협정의 양자 해결 강조를 이유로 거부했다.57 기후 변화, 특히 해수면 상승(SLR)은 크릭의 지형과 항행 가능성을 변화시켜 분쟁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며, 잠재적으로 인도의 탈베그 주장을 강화할 수 있다.56 카슈미르보다 덜 불안정한 문제이지만, 시르 크릭은 아라비아해의 해상 경계 및 자원 주장에 영향을 미치는 미해결 영토 분쟁으로 남아있다. 기후 변화는 새로운 복잡성을 더하여 향후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2019년 인도의 370조 폐지와 카슈미르에서의 후속 조치들은 내부 문제로 규정되었지만, 기존의 틀(카슈미르 지위에 대한 심라 협정의 양자주의 정신 등)에 근본적으로 도전하고 인도의 의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의 불안감을 예측 가능하게 고조시키고 분쟁을 더욱 국제화시킨 보다 단호하고 통합주의적인 정책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의미한다. 370조는 잠무 카슈미르에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부여하여 독특한 역사적 맥락을 인정했다.28 그 폐지는 완전한 통합을 목표로 했다.28 파키스탄은 이를 양자 간 이해와 유엔 결의 위반으로 간주했다.27 인도의 파키스탄 국제적 “소외” 및 카슈미르를 분쟁 지역에서 제외하려는 정책은 26 팔할감 공격과 그에 따른 긴장 고조가 카슈미르를 국제 의제로 복귀시킴으로써 역효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26 이는 매우 논쟁적인 문제, 특히 역사적인 국제적 차원을 가진 문제에 대한 일방적인 조치는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며, 분쟁의 정상화 또는 소외라는 의도된 장기 전략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신 새로운 불만과 갈등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
파키스탄 기반 단체들이 주장하는 테러 공격의 빈도와 강도 증가, 그리고 인도의 보다 공공연하고 강력한 보복 군사 행동(예: 발라코트, 신두르 작전)은 양측 모두 판돈을 올리고 전통적인 레드 라인을 잠식하며 더 크고 의도하지 않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오판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확전적 순환을 나타낸다. 인도의 전통적인 테러 대응은 외교적 압력과 제한적인 군사 행동이었다.38 2016년 “정밀 타격”, 2019년 발라코트 공습, 2025년 “신두르 작전”은 파키스탄 영토 내 타격을 포함하여 점점 더 단호해지는 인도 군사 대응의 추세를 보여준다.9 파키스탄은 테러에 대한 공식적인 개입을 부인하면서도 국내 지지층을 만족시키고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 군사 행동에 보복해야 한다고 느낀다.38 2025년 드론과 미사일과 같은 정교한 무기를 포함하는 이러한 보복의 역학은 33 각 행동과 반응이 잘못 해석되거나 통제 불능의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환경을 조성하며, 특히 핵 배경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인도가 설정한 “새로운 보복의 문턱” 47은 미래의 위기가 확전 사다리의 더 높은 단계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더스강 조약 중단 및 무역/외교 관계 중단과 같은 비군사적 수단의 무기화는 전통적인 군사 대결을 넘어 분쟁 영역이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장기적인 지역 안정과 인도주의적 영향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포괄적인 강압 전략을 나타낸다. 인도의 IWT 중단은 9 이전 전쟁에서도 조약이 유지되었던 과거 관행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1 외교관 추방, 비자 취소, 국경 및 영공 폐쇄, 무역 금지 등의 조치는 9 위기 시 표준 대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군사 영역을 넘어 상대방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고 지역 경제 연계를 방해하며 55 기존의 몇 안 되는 협력 채널을 침식한다. 이러한 추세는 미래의 분쟁이 경제 및 자원 전쟁을 점점 더 많이 포함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군사적 철수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 걸친 조치를 되돌려야 하므로 긴장 완화가 더욱 복잡해진다. 이는 또한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일반 시민들의 고통을 증가시킨다.
E. 표: 군사력 비교 (재래식 및 핵) (2024-2025년 데이터)
항목 | 인도 | 파키스탄 | 출처 |
현역 군인 수 | 약 145만 명 (육군 123.7만, 해군 7.55만, 공군 14.99만) | 약 65.4만 명 (육군 56만, 해군 3만, 공군 7만) | 31 |
국방 예산 (2024/25) | 약 860억 달러 (GDP의 2.3%) | 약 102억 달러 (GDP의 2.7%) | 31 |
주요 재래식 무기 | |||
– 전차 | 약 3,151 ~ 4,201대 | 약 1,839 ~ 2,627대 | 40 |
– 군용 항공기 | 약 2,229대 | 약 1,399대 | 40 |
– 해군 자산 | 약 293척 | 약 121척 | 40 |
핵탄두 (추정치) | 약 172 ~ 180+기 | 약 170+기 | 45 |
운반 체계 | Prithvi, Agni 시리즈 (단거리~중거리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개발 중), 순항 미사일 (BrahMos) | Ghaznavi, Shaheen, Ghauri, Nasr (단거리~중거리 탄도 미사일), 순항 미사일 (Babur, Ra’ad) | 42 |
IV. 평화를 향한 여정: 합의, 대화, 그리고 장애물
A. 획기적인 평화 노력
- 심라 협정 (1972): 조항과 유산:1971년 전쟁 후 인디라 간디와 줄피카르 알리 부토가 서명했다.1조항: 양국은 분쟁을 양자 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무력 사용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다.17 1971년 12월 휴전선에 기초하여 카슈미르 통제선(LoC)을 공식화했으며, 양측은 이를 일방적으로 변경하지 않기로 서약했다.1 9만 명 이상의 파키스탄 전쟁 포로 송환을 촉진하고 17 파키스탄의 방글라데시 인정을 위한 길을 열었다.17유산/영향: 인도에게는 카슈미르의 양자 해결을 주장하고 제3자 중재를 배제하는 초석이 되었다.10 그러나 그 이행은 불신과 위반, 특히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반군 지원과 카르길 분쟁으로 인해 방해받았다.18 파키스탄은 2025년 4월 긴장 고조 속에서 심라 협정을 중단했으며 3, 인도는 이를 자국 행동에 대한 외교적 제약 해제로 볼 수 있다.17 수십 년 동안 특히 카슈미르와 관련하여 인도-파키스탄 관계의 틀을 정의한 중추적인 합의였다. 최근 파키스탄의 중단은 중대한 외교적 파열을 의미하며 기존 교전 규칙을 잠재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 라호르 선언 (1999): 열망과 좌절:1999년 2월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와 나와즈 샤리프 총리가 서명했다.1조항: 심라 협정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1 핵무기를 책임감 있게 개발하고, 핵무기의 우발적/무단 사용을 피하며,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사전 통지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22 카슈미르 및 기타 분쟁 해결 노력 강화, 대화 증진, 테러 규탄, 내정 불간섭에 대한 약속을 포함했다.22좌절/영향: 국제적으로 돌파구로 환영받았지만 22, 그 약속은 불과 몇 달 후 파키스탄 군부 내 강경파(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 포함)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카르길 전쟁으로 산산조각 났다.20 이는 신뢰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평화 프로세스를 중단시켰다.22 평화 구상이 강경파나 미해결 핵심 문제에 의해 어떻게 좌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이는 신뢰의 취약성과 핵 상황에서 신뢰 구축 조치 이행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 아그라 정상회담 (2001): 놓쳐버린 기회:2001년 7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 간의 회담이었다.1논의된 문제: 카슈미르, 국경 간 테러, 핵 위험 감소, 전쟁 포로, 상업 관계 등이 논의되었다.62 무샤라프는 카슈미르에 대한 “4개항 해법”을 제안했다.64실패 원인: 협상은 결렬되었고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62 실패 원인으로는 카슈미르에 대한 무샤라프의 “무리한 요구”, 모든 진전을 카슈미르와 연계시키려는 그의 주장, 테러리즘 경시 등이 언급된다.63 카르길의 설계자로 여겨지는 무샤라프에 대한 불신과 국경 간 침투 중단에 대한 파키스탄의 약속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한 인도의 주저함도 있었다.62 일부 기록에 따르면 L.K. 아드바니 등 인도 강경파가 정상회담 결렬에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62 특히 카슈미르와 테러리즘과 같은 핵심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었다. 근본적인 불일치가 지속될 경우 최고 지도자 수준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을 입증했다.
B. 대화 메커니즘과 그 효능
- 복합 대화 프로세스:199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3년간의 중단 후 2004년에 재개되었다.65 카슈미르, 평화와 안보, 테러리즘, 경제 협력 등 8가지 주요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과정은 정치적 긴장, 테러 공격 또는 국경 긴장 고조로 인해 자주 중단되었다.65 구조화된 참여 플랫폼을 제공했지만, 관계의 불안정한 특성으로 인해 종종 희생양이 되었으며, 정치적 의지와 유리한 환경 없이는 대화 메커니즘만으로는 불충분함을 보여주었다.
- 트랙 II 외교 구상:학자, 퇴직 관리, 언론인, 시민 사회 구성원 간의 비공식적, 비정부적 대화를 포함한다.66 대중의 감시와 정치적 제약에서 벗어나 이해를 증진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공식(트랙 I) 외교를 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66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특히 공식 회담이 중단되었을 때 대안적인 소통 채널을 제공했다.29 트랙 II 외교는 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귀중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공식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종종 간접적이고 측정하기 어렵다. 정당성 문제와 비공식적 논의를 실질적인 정부 조치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66
C. 지속적인 대화와 평화의 장애물
- 상호 불신과 역사적 적대감:분할의 트라우마, 이후의 전쟁, 수십 년간의 분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29 각 측은 상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종종 역사적 불만의 렌즈를 통해 행동을 해석한다.29 위기 후 자주 발동되는 “대화 불가 정책”은 외교적 막다른 골목으로 작용하여 고립을 조장하고 잘못된 정보가 번성하도록 허용한다.29 이러한 근본적인 불신은 아마도 가장 큰 단일 장애물일 것이며, 지속적인 참여와 타협에 필요한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게 만든다.
- 국내 정치와 민족주의의 역할:양국의 민족주의 고조는 역사적 불만과 정치적 수사에 의해 촉발되어 확전 위험을 높이고 타협을 정치적으로 값비싸게 만든다.5 지도자들은 특히 위기 시에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라는 국내 압력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32 “승리”로 인식되거나 강력한 대응은 정치적 인기를 높일 수 있다 (예: 발라코트 이후 모디의 인기).32 특히 최근 긴장 고조 시 언론은 국수주의와 허위 정보를 증폭시켜 민족주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평화에 적대적인 대중적 서사를 형성한 것으로 비난받았다.29 국내 정치적 강제는 종종 외교적 필요성보다 우선시되어 강경 노선 정책과 평화에 약점으로 인식될 수 있는 대화 참여를 꺼리게 만든다. 민족주의적 서사는 적의 이미지를 영속시켜 평화로운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 군부의 영향:파키스탄 군부는 역사적으로 대인도 외교 및 안보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종종 인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왔다.1 군부의 막대한 예산과 영향력을 정당화할 필요성이 분쟁 지속에 기여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민간 통제가 강력하지만, 군대의 관점과 작전 준비태세는 위기 결정의 핵심 요소이다.74 특히 저강도 분쟁과 국경 교전의 지속은 지속적인 군사적 개입과 계획을 수반한다.1 양국 군부의 제도적 이해관계와 관점은 평화에 대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평화가 그들의 전략적 중요성이나 국가 안보 교리를 약화시킨다고 인식될 경우 더욱 그렇다.
평화 구상과 주요 위기의 순환적 패턴(예: 라호르 선언 후 카르길, 아그라 정상회담 후 의회 공격 대치)은 평화 프로세스가 근본적인 안보 딜레마와 깊이 뿌리내린 불신을 해결하거나 변경하는 데 종종 실패하여, 스포일러나 정치/안보 환경 변화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시사한다. 라호르 선언 22은 핵 신뢰구축조치(CBM)와 카슈미르 해결을 목표로 했지만, 파키스탄 군부 내 강경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카르길 사태로 즉시 약화되었다.22 아그라 정상회담 62은 카슈미르와 테러리즘에 대한 화해 불가능한 입장 차이로 실패했다. 곧이어 2001년 의회 공격은 대규모 군사 대치로 이어졌다.1 이러한 패턴은 고위급 정상회담과 선언이 상징적으로 중요하긴 하지만, 핵심 행위자(특히 강경파나 정보기관)의 준수를 강제하거나 근본적인 전략적 계산을 변경할 메커니즘이나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평화 노력은 취약한 기반 위에 구축된다.
심라 협정에서 “양자주의”를 강조한 것은 인도가 외부 간섭을 배제하려는 의도였지만, 때로는 양자 채널이 무너지면 외교적 교착 상태로 이어져 긴장 완화나 해결을 위한 대안적 수단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특히 한쪽(파키스탄)이 국제화를 추구할 때는 더욱 그렇다. 심라 협정은 분쟁의 양자 해결을 강조했다.17 인도는 카슈미르에서의 제3자 중재에 저항하기 위해 이를 일관되게 원용한다.10 그러나 양자 회담이 결렬되면(자주 발생하는 일 29), 양자주의에 대한 이러한 고집은 장기간의 무관여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파키스탄은 종종 카슈미르 문제를 국제화하려고 시도하여 18 외교적 교착 상태를 만든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양 당사자가 기꺼이 참여한다면 양자주의가 이상적이지만, 깊은 불신의 맥락에서 경직된 적용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3자 촉진이나 중재와 같은 다른 외교 도구의 사용을 방해하여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파키스탄의 2025년 심라 협정 중단 61은 이 원칙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복합 대화와 같이 복잡한 문제를 구획화하는 대화 프로세스의 바로 그 구조는 전체론적 해결책을 의도치 않게 방해할 수 있다. 한 분야에서의 진전이 다른 분야에서의 진전 부족에 발목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슈미르와 테러리즘과 같은 핵심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 또는 양쪽 모두에게 협상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때는 더욱 그렇다. 복합 대화에는 여러 “바구니”의 문제가 있었다.65 파키스탄은 종종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한 진전을 카슈미르에 대한 진전과 연관시킨다.63 인도는 종종 대화를 국경 간 테러 중단과 연관시킨다. 이러한 연계는 테러 공격이 모든 전선에서의 회담을 중단시키거나, 카슈미르에 대한 교착 상태가 무역이나 문화 교류와 같은 덜 논쟁적인 문제에 대한 협력을 막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호 연결성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대화 과정을 단일 실패 지점에 매우 취약하게 만들어, 특정 분야에서 보다 유연하거나 아마도 분리된 접근 방식이 추진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 자체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D. 표: 주요 평화 협정 및 대화 시도
협정/대화 명칭 | 연도 | 주요 참여자 | 핵심 목표/조항 | 주요 성공 (있는 경우) | 실패/정체 이유 |
타슈켄트 선언 | 1966 | 인도(랄 바하두르 샤스트리), 파키스탄(아요브 칸), 소련(중재) | 1965년 전쟁 종식, 전쟁 전 상태로 군대 철수, 외교 관계 복원 | 전쟁 종식, 군대 철수 | 카슈미르 근본 문제 미해결, 이후 관계 악화 |
심라 협정 | 1972 | 인도(인디라 간디), 파키스탄(줄피카르 알리 부토) | 1971년 전쟁 후 관계 정상화, 분쟁의 양자적 평화 해결, LoC 설정 및 존중, 전쟁 포로 송환 | 전쟁 포로 송환, 방글라데시 인정 기반 마련, 수십 년간 양자 관계의 틀 제공 | 카슈미르 문제 미해결, 파키스탄의 협정 위반 주장(카르길 등), 2025년 파키스탄의 협정 중단 |
라호르 선언 | 1999 | 인도(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파키스탄(나와즈 샤리프) | 심라 협정 재확인, 핵무기 관련 신뢰 구축 조치(CBMs), 카슈미르 등 분쟁 해결 노력 강화, 테러 규탄 | 초기 국제적 환영, 핵 CBMs 합의 | 카르길 전쟁 발발로 즉시 와해, 신뢰 심각 손상 |
아그라 정상회담 | 2001 | 인도(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파키스탄(페르베즈 무샤라프) | 카슈미르, 테러리즘, 핵 위험 감소 등 포괄적 논의 | 양국 정상 간 직접 대화 | 카슈미르 및 테러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 상호 불신, 합의 도출 실패 |
복합 대화 프로세스 | 1990년대 후반 시작, 2004년 재개 | 인도 및 파키스탄 외교 관리 | 카슈미르, 평화와 안보, 테러리즘, 경제 협력 등 8개 분야 논의 | 일부 분야(무역, 인적 교류)에서 제한적 진전 | 테러 공격, 정치적 긴장으로 반복적 중단, 핵심 문제 교착 |
2021년 LoC 정전 합의 | 2021 | 인도 및 파키스탄 군사 작전 책임자(DGMOs) | LoC 및 기타 모든 부문에서 정전 엄격 준수 | 초기 정전 준수로 긴장 완화 | 2025년 긴장 고조로 사실상 와해 |
V. 국제적 차원: 강대국의 역할과 반응
A. 유엔: 중재에서 관찰로
초기 유엔의 개입은 중요했다. 1948년 결의안 47호는 카슈미르에서의 국민투표를 제안했고 3, 1949년 UNMOGIP는 휴전선을 감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10 인도는 1972년 심라 협정 이후 카슈미르를 양자 문제로 간주하며 UNMOGIP를 대체로 무관하다고 본다.10 반면 파키스탄은 계속해서 유엔에서 카슈미르 문제를 제기한다.10 현재 유엔의 역할은 주로 관찰자이자 우려 표명의 장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위기 시 종종 자제를 촉구한다.10 2025년 긴장 고조 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팔할감 공격에 대한 언론 성명을 발표하여 가해자 책임 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39 유엔 사무총장은 양측이 수용 가능한 긴장 완화 및 대화 재개를 위한 지원을 제안했다.75 그러나 UNMOGIP는 팔할감 공격 발생 지역에 주둔하지 않고 있다.75 중국은 때때로 인도에 유리한 유엔 결의안을 막기도 했다.10 유엔의 직접적인 평화 중재 역할은 주로 인도의 양자주의 입장 때문에 초기 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유엔은 여전히 국제 여론의 장이자 분쟁의 국제적 차원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있다. 비록 이행되지 않았지만 유엔 결의안은 파키스탄에 의해 계속 인용되고 있다.
B. 미국: 변화하는 전략적 계산
역사적으로 미국은 휴전 중재에 역할을 했다 (예: 1965년 전쟁 9; 1999년 카르길 전쟁 9). 9/11 이후 파키스탄은 대테러 전쟁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었지만, 이후 관계는 악화되었다.1 동시에 특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인도 전략적 파트너십은 심화되었다.32 2019년 위기 시 미국은 긴장 완화에 역할을 했다.34
2025년 긴장 고조 시:
트럼프 행정부는 처음에 J.D. 밴스 부통령이 “근본적으로 우리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개입을 꺼리는 태도를 보였다.61 이는 과거 미국의 개입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후 긴장 완화를 촉구했고 37,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인도의 자위권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37 트럼프 대통령은 고조되는 긴장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37 미국은 테러에 맞서는 인도를 지원하는 것과 핵보유국 간의 광범위한 분쟁을 막는 것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37 현재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37 분석가들은 미국이 인도 파트너십 강화와 분쟁 완화 사이의 균형을 맞추고, 억제된 대응을 장려하며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37 미국의 역할은 적극적인 중재자에서 남아시아에서의 변화하는 전략적 우선순위를 반영하는 보다 복잡한 균형 잡기로 진화했다. 미국의 입장은 국제적 압력과 인도 및 파키스탄의 위기 관리 계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인도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인식되면 뉴델리를 대담하게 만들 수 있는 반면 워싱턴의 이슬라마바드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다.
C. 중국: 파키스탄의 전천후 동맹이자 인도의 경쟁자
중국은 파키스탄의 주요 투자국(예: CPEC)이자 핵심 군사 공급국이며 40, 역사적으로 파키스탄에 외교적 지원을 제공해왔다.3 중국은 라다크(광의의 카슈미르 지역 일부)를 포함하여 인도와 자체적인 국경 분쟁을 겪고 있으며 44, 2020년 중-인도 충돌은 인도의 전략적 초점에 영향을 미쳤다.71 2019년 위기 시 중국은 평온을 촉구했다.44
2025년 긴장 고조 시:
중국은 “우려”를 표명하고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으며 “건설적인 역할”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41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이 파키스탄의 안보 우려를 이해하고 주권 수호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41, 팔할감 공격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지지한다고도 했다.41 중국의 개입은 자체적인 전략적 이해관계와 인도와의 경쟁으로 인해 복잡하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중국이 원치 않는 혼란일 수 있지만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71 중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파키스탄에 대한 강력한 지지는 이슬라마바드에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제공하여 국제적 압력에 대한 취약성을 잠재적으로 줄여준다. 인도와의 자체적인 긴장 관계는 지역 안정에 또 다른 복잡성을 더한다.
D. 광범위한 국제 사회의 위기 대응 (특히 2025년)
2025년 팔할감 공격과 후속 공습 이후 세계 지도자들(미국,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은 긴장 완화를 촉구했고 34, 이란은 중재를 제안했다.34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자의 입장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외교 캠페인을 벌였다.34 인도는 공격과의 “국경 간 연계성”에 대해 외교관들에게 브리핑했고 34, 파키스탄은 국제 조사 협력을 제안했다.34 걸프 국가들은 양국과의 관계로 인해 자제 촉구에 더 적극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61 UAE는 2021년 휴전 중재에 도움을 주었다.74 양국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 때문에 국제적 우려는 높다.26 강대국들이 자제를 촉구하는 동안, 그들의 개별적인 전략적 이해관계와 동맹 관계는 엇갈린 신호로 이어질 수 있다. 집단적인 국제적 대응은 위기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효과는 메시지의 통일성과 인도 및 파키스탄이 외부 조언을 경청할 의지에 달려 있다.
단극 체제의 쇠퇴와 다극 체제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우선순위 변화는 인도-파키스탄 위기 관리를 위한 더욱 복잡한 국제 환경을 조성했다. 어느 쪽도 과거처럼 특정 외부 세력에 결정적으로 의존하여 유리하게 개입하거나 긴장 완화를 강제할 수 없다. 이전에 주요 긴장 완화자였던 미국은 9 2025년에는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초기에 깊이 개입하기를 꺼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61, 이는 접근 방식의 잠재적 변화를 반영한다. 중국의 영향력 증대와 파키스탄에 대한 강력한 지지 41는 이슬라마바드에 대안적인 지원 기반을 제공하여 미국의 영향력을 잠재적으로 감소시킨다. 인도의 강화된 전략적 자율성과 자체 역량에 대한 집중 71은 중요한 국가 이익이 위태롭다고 인식될 경우 외부의 자제 요구에 덜 귀 기울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향력의 확산은 미래의 위기 관리가 단일 지배적 중재자보다는 관련 강대국 연합이나 지역 행위자(걸프 국가 등 61)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엔의 직접적인 분쟁 해결 역할 축소는 주로 카슈미르에 대한 인도의 일관된 양자주의 입장 때문이며,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성명과 사무총장의 호소가 규범 설정과 국제적 우려 표명에는 중요하지만, 급성 위기 시 긴장 완화의 주요 동인이 되기에는 집행 메커니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는 심라 협정 이후 카슈미르를 양자 문제로 간주하여 유엔 군사 감시단(UNMOGIP)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본다.10 유엔 안보리의 카슈미르 논의는 드물며 54, 성명은 종종 회원국들의 다양한 입장을 수용하기 위해 신중하게 협상된 언어를 반영한다 (예: 파키스탄은 “분쟁 지역”이라는 표현을 원했지만 포함되지 않음 54). 사무총장의 중재 제안은 양 당사자의 수락을 전제로 하는데 75, 핵심 문제에 대해 인도에서는 거의 수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엔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세계 여론을 반영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을 중단시키거나 해결하는 데 미치는 실제적인 영향은 당사자들의 의지와 영향력 있는 회원국들의 별도 외교 노력에 크게 의존한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특히 미-인도 연대와 중-파키스탄 축 사이의 광범위한 지정학적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이는 양자 분쟁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주요 대립도 이러한 세계 강대국들을 끌어들이거나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판돈을 높인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도를 본다.32 중국은 파키스탄과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상당한 경제(CPEC) 및 군사 투자를 포함한다.40 분석가들은 이 분쟁이 미-중 대리 전쟁터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78 이러한 지정학적 중첩은 양자 문제가 더 이상 순전히 지역적인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세계 권력 역학과 얽혀 있어, 이러한 더 큰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므로 해결책이 더욱 복잡해진다. 긴장 고조는 또한 한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에 대항하여 이용할 수도 있다.
VI. 영향 분석: 장기화된 분쟁의 결과
A. 인도에 대한 사회경제적 및 정치적 파급 효과
- 정치적 영향:분쟁, 특히 테러리즘과 국경 교전은 국내 정치와 국가 안보 담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1 정부는 종종 강력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중의 압력에 직면하며 32, 이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 발라코트 이후 모디의 인기 상승 32). 지속적인 분쟁은 외교적 입장을 경직시키고 평화 구상을 좌절시킬 수 있다.1 인도의 370조 폐지 및 “신두르 작전”과 같은 조치는 더욱 단호한 정치적, 군사적 태세를 반영한다.26
- 경제적 영향:국방비 지출이 상당하며, 인도는 세계 최대 무기 수입국 중 하나이다.31 이는 개발 자원의 전용을 의미한다. 분쟁과 긴장은 시장 변동성을 야기한다 (예: 위기 시 주식 시장 하락 36). 역사적으로 낮았지만 파키스탄과의 무역은 긴장이 고조될 때 중단된다 (예: 풀와마, 팔할감 이후 43). 인도의 대파키스탄 수출품은 주로 의약품, 화학제품, 농산물이다.43 국경 지역, 특히 카슈미르의 관광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53 전면전은 인도에게 하루 군사 작전 비용으로 6억 7천만 달러, 광범위한 경제적 손실은 하루 178억 달러(4주 분쟁 시 GDP 20% 위축)에 이를 수 있다.55 첫 달에 100억~150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 유출 가능성이 있다.55 IPL 크리켓 토너먼트 중단과 항공편 운항 차질은 광범위한 경제적 영향을 시사한다.36
- 사회적 영향:파키스탄과의 분쟁은 분할의 역사를 고려할 때 공동체 간 긴장을 악화시킬 수 있다.2 실제 적대 행위 중 국경 지역 주민들의 이주가 발생한다.77 해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영향을 미쳐, 해외 인도 및 파키스탄 공동체 간의 긴장 고조 가능성이 있다.83 종종 언론에 의해 증폭되는 민족주의적 열정과 국수주의는 사회 통합과 공동체 간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72
B. 파키스탄에 대한 사회경제적 및 정치적 파급 효과
- 정치적 영향:카슈미르 문제와 인도와의 관계는 파키스탄의 국가 정체성과 외교 정책의 핵심이다.5 군부는 대인도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25 국내 정치 담론은 종종 반인도 수사로 지배된다.25 카르길 전쟁은 정치적 격변(무샤라프 쿠데타)으로 이어졌다.21 최근의 긴장 고조(2025년)는 정부에 강력한 대응 압력을 가하고 있다.44
- 경제적 영향:파키스탄 경제는 인도보다 취약하다.26 분쟁은 GDP 성장률 하락, 수출 차질, 자본 유출, 통화 가치 하락 등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야기한다.43 높은 국방비 지출(총 예산의 약 16% 82)은 개발 자원을 전용시킨다.25 인도와의 무역 중단은 파키스탄 상인들에게 타격을 주며, 특히 의약품, 농산물과 같은 필수품목에서 더욱 그렇다.53 풀와마 사태 이후 대인도 수출(예: 섬유, 시멘트)이 급감했다.84 위기 시 국제 구제 금융(예: IMF) 의존도가 높아진다.82 중국의 금융 지원(채무 롤오버)은 일부 즉각적인 압력을 완화하지만 의존도를 높인다.85 인도의 인더스강 조약 중단은 파키스탄 농업 경제(GDP의 22.7%, 물 소비량의 95% 이상)에 실존적 위협을 가한다.55
- 사회적 영향:장기화된 분쟁과 반인도 수사는 국가 정체성과 사회적 태도를 형성한다.25 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생활 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부 안보 문제(예: 발루치스탄, 카이베르 파크툰크와 분리주의)는 외부 분쟁과 경제적 스트레스로 악화될 수 있다.26
C. 인적 비용: 이주, 사상자, 그리고 심리적 트라우마
분할 자체로 최대 100만 명이 사망하고 1,500만 명이 이주했다.1 전쟁과 교전으로 수십 년 동안 수만 명의 사상자(민간인, 반군, 정부군)가 발생했다.2 1971년 전쟁만으로도 약 3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9 통제선과 국경 지역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은 포격, 이주, 공포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29 2025년 긴장 고조 시 양측 모두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1 카슈미르에서의 반란은 광범위한 인권 문제, 구금, 지역 주민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야기했다.2 탄압은 종종 집단 처벌을 수반한다.34 잠재적인 핵 분쟁은 직접적으로 5,000만 명을 사망시키고 전 지구적 기후 파괴와 수십억 명의 기근을 초래할 수 있다.86 KANUPP와 같은 핵 시설에 대한 재래식 공격만으로도 방사능으로 인한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86 인적 비용은 막대하고 다면적이며, 즉각적인 사상자를 넘어 특히 카슈미르와 같은 피해 지역의 장기적인 심리적 트라우마, 이주, 사회 구조 침식으로 이어진다.
D. 남아시아 안정과 경제 발전에 대한 함의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지역 협력과 SAARC 성공의 주요 장애물이다.60 이는 지역 불안정을 야기하고 외국인 투자를 저해하며 무역로를 방해하여 인도와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네팔, 방글라데시 등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친다.59 이 분쟁은 지역 전체의 군사비 지출로 막대한 자원을 전용시켜 사회경제적 발전, 의료, 교육을 저해한다.60 특히 핵 분쟁 위험은 세계 평화와 경제 안정에 위협이 되며, 에너지 시장, 공급망, 전 세계 투자자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59 기회비용은 엄청나다. 관계 정상화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양자 무역을 창출하고 지역 개발 프로젝트를 육성할 수 있다.60 이 분쟁은 남아시아 전체 지역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하여 완전한 경제 및 개발 잠재력 실현을 막고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발화점으로 남게 한다.
분쟁의 경제적 비용은 직접적인 군사 지출과 무역 손실을 넘어선다. 이는 남아시아 전체 지역에 지속적인 “위험 프리미엄”을 부과하여 장기적인 외국인 투자와 글로벌 가치 사슬로의 통합을 저해함으로써 전반적인 지역 경제 역동성을 위축시킨다. 투자자들은 분쟁과 불안정에 취약한 지역을 경계한다.59 직접적인 분쟁이 산발적이더라도 근본적인 긴장과 확전 위험은 불확실성을 야기하며, 이는 기업 신뢰와 투자 결정에 해롭다. 이는 인도와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지역 안정에 경제적 전망이 달려 있는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친다.82 SAARC가 ASEAN이나 EU와 달리 효과적인 경제 블록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주로 인도-파키스탄 적대 관계 때문이다.60 이는 전체 지역이 심화된 경제 통합의 혜택을 놓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분쟁은 특히 국경 지역과 카슈미르에서 양국의 인적 자본 개발에 심대하고 종종 정량화되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폭력, 이주, 경제적 궁핍 속에서 성장하는 세대는 제한된 기회에 직면하여 빈곤과 불만의 순환을 영속시킨다. 국방으로 전용된 자원은 교육과 의료에서 빼앗긴다.82 분쟁은 피해 지역의 교육(학교 폐쇄 36)과 필수 서비스 접근을 방해한다. 분쟁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29 개인의 생산성과 복지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인적 자본의 침식은 즉각적인 경제 수치를 넘어서는 장기적인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며,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급진화에 더 취약해짐에 따라 미래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특히 카슈미르 차원은 “디아스포라 파급 효과”를 가져, 아대륙의 긴장과 서사가 해외 인도 및 파키스탄 공동체 내에서 복제되고 때로는 증폭되어 주최국의 사회 통합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83은 분쟁으로 인해 호주 내 일부 인도 및 파키스탄 공동체 구성원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논의한다. 소셜 미디어는 서사 전파와 보이콧 요구에 역할을 하여, 분쟁의 영향력이 디아스포라 인구에게 디지털 방식으로 확장됨을 나타낸다.83 이는 이 분쟁이 단지 두 국가 간의 양자 문제가 아니라 초국가적인 사회적 함의를 가지며,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제3국에서의 공동체 참여와 대화 노력이 필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VII. 해결을 향한 길과 미래 전망
A. 카슈미르 분쟁 해결 제안 분석
- 국민투표: 역사적 맥락과 현재 실현 가능성:1948-49년 유엔 결의안에 의해 약속되었다.2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인들이 인도 또는 파키스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를 지지한다.70 인도는 편입이 최종적이었으며 파키스탄 군대 철수와 같은 국민투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인도는 유엔 결의안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간주하며 70, 심라 협정은 양자 해결을 강조했다.실현 가능성: 매우 낮다. 인도는 강력히 반대한다.10 유엔 결의안은 독립 옵션 없이 인도 또는 파키스탄 편입만을 규정한다.87 1948년 이후 인구 통계학적, 정치적 지형이 크게 변화했다. 역사적으로 파키스탄 입장의 핵심이었지만, 국민투표 옵션은 인도에게는 대체로 논외이며 엄청난 현실적, 정치적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 통제선(LoC)의 국제 국경(IB) 전환:이는 기존의 카슈미르 분할을 공식화하는 것이다.30장점: 기존 현실에 기반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여 잠재적으로 영토 분쟁을 종식시키고 LoC를 따른 군사적 대치를 줄일 수 있다.88 완화된 국경 협정과 결합될 경우 무역과 이동을 촉진할 수 있다.88단점: 양국 모두 상대방이 관리하는 카슈미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해야 하므로, 특히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을 포함한 국내 여론에 정치적으로 어렵다.88 분리주의 단체와 파키스탄은 다른 양보나 카슈미르인의 동의 없이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분쟁을 통해 달성된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파키스탄의 동의가 필요하며 상당한 외교적 협상이 요구된다.88 자주 논의되는 “실용적인” 해결책이지만, 카슈미르에 대한 확고한 최대주의적 입장으로 인해 양국 모두에서 주요 정치적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 독립 카슈미르 구상:카슈미르 계곡에서 강력한 공감을 얻고 있다(“아자디” 정서).87 역사적으로 카슈미르는 1586년 무굴 제국에 편입되기 전까지 독립 국가였다.87실현 가능성: 극히 어렵다.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자국이 통제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영토를 포기해야 하므로 반대할 것이다.87 독립 카슈미르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러시아 인근)과 국경을 접하여 지리적으로 취약하며 87, 강대국 경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 생존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대규모 산업이 부족하여 초기에는 외국 원조와 투자에 크게 의존해야 할 것이다.87 수력 발전, 관광, 농업 등 천연자원은 풍부하지만 개발을 위해서는 안정이 필요하다.89 자체 억지력이나 강력한 국제적 보장 없이는 군사 안보가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89 다양한 공동체의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아 내부 통치가 불안정해지고 새로운 소수 민족 문제와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87 국제적 인정 또한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89 일부 카슈미르인들의 열망에는 호소력이 있지만, 지정학적, 경제적 현실은 독립 카슈미르를 매우 비현실적이고 잠재적으로 불안정한 결과로 만든다.
- 무샤라프의 4개항 공식과 그 관련성:2006년경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이 제안했다.64요소: (i) LoC 양측의 비무장화 또는 단계적 군대 철수. (ii) 국경 변경 없음, 그러나 LoC를 무의미하게 만들거나 자유로운 인적 이동이 가능한 다공성 경계로 전환. (iii) 독립 없는 카슈미르인들의 자치/자율성. (iv) 인도-파키스탄-카슈미르 공동 감독 메커니즘.64관련성: 해결책이 가장 가까웠던 시기로 간주된다.52 카슈미르의 PDP는 이를 기반으로 “자치”를 채택했다.90 이 공식은 유엔 결의나 영유권 주장에 대한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중간 지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인도의 370조 폐지 이후 메흐부바 무프티와 같은 일부 카슈미르 정치인들은 유사한 접근 방식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90 국경 변경 없이 자치와 비무장화를 통해 카슈미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가장 상세하고 잠재적으로 실행 가능한 프레임워크 중 하나를 나타낸다. 담론에서의 부활은 틀에 박히지 않은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만, 현재 정치적 신뢰 수준은 극도로 낮다.
- 공동 관리 모델:무샤라프 공식의 “공동 감독 메커니즘” 외에는 구체적인 세부 제안이 자료에서 발견되지 않았다.6493와 1은 이 특정 지점과 관련이 없다. 개념적으로 공동 관리는 현재 부재한 전례 없는 수준의 신뢰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인도-파키스탄 맥락에서 대체로 이론적인 구성으로 남아 있다.
B. 경제 협력과 수자원 관리의 역할
양자 간 무역 관계 정상화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무역을 창출할 수 있다.60 경제적 상호의존은 이론적으로 분쟁 유인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역은 종종 정치적 긴장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된다.43 파키스탄은 인도에 최혜국 대우(MFN)를 부여하지 않았다.25 인더스강 조약(IWT)은 협력의 주요 사례였다.51 최근 인도의 조약 중단은 9 이러한 협력의 취약성을 강조한다. IWT 준수를 통한 물 문제 해결, 분쟁 해결을 위한 세계은행의 촉진 가능성, 최적의 물 사용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 개발(릴리엔탈이 원래 구상했던 것처럼 51)은 신뢰구축조치(CBM)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인도의 입장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물을 사용하는 것이다.50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재정적 압박만으로는 핵심 안보 분쟁을 완화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정치적 해결이 상당한 경제 협력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85 경제 협력과 공동 수자원 관리는 평화 구축과 상호 이익을 위한 잠재적인 경로를 제공하지만, 현재 주요 정치 및 안보 분쟁에 의해 가려지고 종종 약화된다. 이 분야의 진전은 핵심 문제에 대한 진전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C. 미래 인도-파키스탄 관계 시나리오
- 지속적인 교착 상태와 산발적인 위기:이 시나리오는 지속적인 상호 불신, 미해결 분쟁(특히 카슈미르), 빈번한 국경 교전, 테러 공격이나 정치적 도발로 인한 주기적인 주요 위기를 포함한다.2 국내 정치와 민족주의가 계속해서 긴장을 야기한다.32 핵 억지력은 전면전을 막지만 제한적인 분쟁은 막지 못한다.31
- 점진적인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이는 지속적인 막후 채널 소통(NSA 회담 재개는 작은 진전 26), 휴전 준수, 대화를 통해 핵심 불만을 해결하려는 양측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26 국제 행위자들이 지원 역할을 할 수 있다.27 인도주의적 문제와 인적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10
- 분쟁 재발 가능성:현재의 높은 긴장 상태(2025년 긴장 고조)를 고려할 때, 오판이나 의도적인 긴장 고조로 인해 더 광범위한 재래식 전쟁(또는 제한적인 핵 교환까지도)으로 이어질 실질적인 위험이 남아있다.26 인도의 더욱 단호한 군사 태세와 파키스탄의 보복 약속은 불안정한 역학 관계를 조성한다.38 IWT 및 심라 협정과 같은 조약 중단은 불안정을 가중시킨다.50
D. 남아시아 평화를 위한 장기 비전
지역 주민들의 분열적 이념과 전쟁광적 태도에 대한 집단적 거부가 필요하다.91 파키스탄은 테러 네트워크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92, 인도는 자국 정책을 성찰하고 포용적 대화를 통해 카슈미르인들의 불만을 해결해야 한다.92 분쟁보다는 외교, 협상, 중재를 강조해야 한다.25 지역 협력(SAARC)과 경제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60 기후 변화와 경제 불안정과 같은 공동의 도전을 협력의 필요성으로 인식해야 한다.29 평화를 위한 장기 비전은 양국의 정책, 사고방식, 정치적 의지의 근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며, 시민 사회의 노력과 건설적인 국제적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카슈미르 분쟁에 대한 대부분의 제안된 “해결책”은 주권이나 국가적 서사에 대한 중대한 타협을 포함하며, 이는 현재 한쪽 또는 양쪽 국가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는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결정적인 해결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며, 분쟁 해결 노력보다 분쟁 관리 및 긴장 완화 메커니즘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국민투표는 인도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70 통제선(LoC)을 국제 국경(IB)으로 만드는 것은 양측 모두 영유권을 포기해야 하므로 국내적으로 어렵다.88 독립 카슈미르는 양측 모두 반대하며 막대한 생존 가능성 문제에 직면한다.87 가장 근접했던 무샤라프의 공식조차도 근본적인 불신과 정치적 변화로 인해 결국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난해함은 즉각적인 대타협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확전을 방지하고(신뢰구축조치, 핫라인, 대화 채널) 현상 유지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수자원과 같은 비전통적 문제의 안보화 증가(인더스강 조약 중단 50)와 기후 변화가 분쟁을 악화시킬 가능성(시르 크릭 56)은 미래 인도-파키스탄 관계가 전통적인 카슈미르/테러리즘 연계 외에 새로운 분쟁 동인에 의해 복잡해질 것임을 나타내며, 보다 적응력 있고 포괄적인 평화 구축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인도의 물 무기화 위협은 49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 공유 하천과 국경 지형에 대한 기후 변화의 영향은 56 새로운 분쟁을 야기하거나 기존 분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인 인간 안보(식량, 물, 생계)에 영향을 미치며 쉽게 정치화되고 국가 안보와 연결될 수 있다. 평화 구축 노력은 이러한 환경 및 자원 차원을 통합해야 하며, 정치적 대화와 함께 기술 협력이 필요하며, 과거 IWT(중단 전)와 같은 성공 사례는 일부 교훈을 제공한다.
트랙 II 외교와 인적 교류는 29 종종 평화로 가는 길로 선전되지만, 국가 중심의 안보 서사와 정치적 분위기의 지배로 인해 그 효과가 심각하게 제한된다. 이러한 구상들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트랙 I 수준에서 그들의 권고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이에 따라 행동하려는 상응하는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트랙 II 대화는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소통을 유지할 수 있다.66 그러나 긴장이 고조될 때 정부는 종종 이러한 상호 작용을 제한하거나 공식 정책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 결과를 무시한다 (“대화 불가 정책” 29). 민족주의 언론의 영향력은 72 트랙 II 과정에서 나오는 보다 미묘한 목소리를 쉽게 잠재울 수 있다. 따라서 트랙 II는 가치가 있지만 공식적인 정치적 참여를 대체할 수 없으며, 정책 변화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수용적인 공식 환경이 필요하다. 주요 유용성은 미래의 공식 회담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거나 외교적 동결 기간 동안 희망을 유지하는 데 있을 수 있다.
VIII. 결론: 위험한 길 탐색
A. 주요 연구 결과 요약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은 1947년 영국령 인도의 분할이라는 격동의 유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특히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미해결된 지위가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역사적 기원은 수십 년에 걸친 불신과 적대감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는 제1차 카슈미르 전쟁(1947-48), 1965년 전쟁,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1999년 카르길 분쟁 등 여러 차례의 주요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이러한 전쟁들은 양국의 국가적 서사를 더욱 경직시키고 상호 의심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2019년 이후, 인도의 헌법 370조 폐지, 풀와마 테러 공격과 그에 따른 발라코트 공습,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5년 팔할감 관광객 공격과 인도의 “신두르 작전” 및 파키스탄의 보복 공격으로 대표되는 긴장 고조는 분쟁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건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리즘의 지속적인 위협과 함께, 양국이 재래식 군사력과 핵 능력을 포함한 군비 경쟁을 계속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2025년의 교전은 핵보유국 간의 첫 드론 전쟁으로 기록되며, 이는 분쟁의 양상이 기술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평화를 향한 노력은 심라 협정, 라호르 선언, 아그라 정상회담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근본적인 불신, 국내 정치적 제약, 강경파의 영향력, 그리고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유엔, 미국, 중국 등 국제 사회의 역할은 시대와 각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위기 관리에는 기여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 장기화된 분쟁은 양국 모두에게 막대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으며, 특히 카슈미르 주민들은 지속적인 폭력과 불안정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남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경제 발전 또한 이 분쟁으로 인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다. 카슈미르 문제에 대한 제안된 해결책들은 각기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것도 양측 모두에게 수용 가능하거나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B.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전망에 대한 성찰적 고찰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의 궤적은 매우 위험하며, 특히 최근의 확전 양상과 기존 조약(인더스강 조약, 심라 협정)의 중단은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포괄적인 분쟁 해결은 요원해 보이지만, 재앙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위기 관리 메커니즘, 긴장 완화 조치, 그리고 비록 처음에는 비공식적일지라도 지속적인 대화 채널 유지가 필수적이다.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양국 모두에서 제로섬 접근 방식을 넘어서는 국가적 서사와 정치적 의지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국내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며, 민족주의적 감정과 역사적 원한을 극복해야 한다. 국제 사회는 해결책을 강요하기보다는 일관되게 자제를 촉구하고 대화를 촉진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남아시아의 미래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할지라도, 지속적인 평화가 달성된다면 이 지역의 막대한 인적, 경제적 잠재력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 상호 존중과 협력에 기반한 미래를 구축하려는 양국의 공동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지역은 계속해서 불안정한 지정학적 발화점으로 남아 수많은 인명과 기회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